韓國文學廣場:喝茶(中)—雜詩

文學,就是用語言塑造形象反映社會生活,又用極強烈的感染力影響社會生活。我們為具備一定閱讀基礎的童鞋準備的韓國文學名作大餐,希望大家提高閱讀的同時,感受這些文學作品中的優美文字感情和藝術表現手法。

韩国文学广场:喝茶(中)—杂诗

차를 마시다

喝茶

중국 고대에전차에서 말차에 이르는 차들을 마신 적이 있고, 현재 사용하는 건 모두 달인 차이다. 카쿠조 오카쿠라(텐신)는 에서 “자연주의 차”라는 묘한 명칭을 부른다. 그래서 우리들이 중요시 하는 것은 바로 이 자연의 훌륭한 맛에 있다.

則我殊不以為然。紅茶帶“土斯”未始不可吃,但這只是當飯,在肚飢時食之而已;我的所謂喝茶,卻是在喝清茶,在賞鑑其色與香與味,意未必在止渴,自然更不在果腹了。

중국인은 찻집에 가서, 왼쪽 오른쪽에 한 그릇씩 놓고(한 사발씩 연거푸) 오랫동안 마시는데, 마치 사막에서 막 돌아온 모습인데, 내 차를 마시는 의미에 꽤나 잘 들어 맞는다(듣기로는 복건, 광동성에선 이른바 공푸차라는 차를 마시는 것은 자연스레 더욱 일리가 있게 된다), 단지 최근에는 너무 조계지화되고, 본의를 잃어버렸고, 그 결과 식당에서 마시는 것 따위로 전락했다는 것이 아쉽다.

中國人上茶館去,左一碗右一碗的喝了半天,好象是剛從沙漠裡回來的樣子,頗合於我的喝茶的意思(聽說閩粵有所謂吃工夫茶者自然更有道理),只可惜近來太是洋場化,失了本意,其結果成為飯館子之流。

단지 시골에 약간의 고풍이 보존되어있는데, 단지 방의 기구만 매우 초라할 뿐이거나, 혹은 꽤나 다도의 의미가 있다고는 하지만, 그러나 이미 차를 마시는 도를 깨달았다고 할 수는 없다.

只在鄉村間還保存一點古風,唯是屋子器具簡陋萬分,或者但可稱為頗有喝茶之意,而未可許為已得喝茶之道也。

다도는 기와집 벽창호 아래에서, 맑은 샘물 녹차를 소박하고 우아한 도자기 차기를 사용해서, 2~3명과 함께 같이 마시는 것에 적당한데, 한나절의 한가함을 얻고, 가히 10년의 속세의 세월과 맞먹는다.

喝茶當於瓦屋紙窗下,清泉綠茶,用素雅的陶瓷茶具,同二三人共飲,得半日之閒,可抵十年的塵夢。

차를 마신 후에, 다시 각 사람의 잘하는 학문을 지속해서 정진해야 한다. 명예를 위해서든 이익을 위해서든, 모두 불가능한 것은 없지만, 우연한 짧은 시간에 유유자적하는 것 역시 정말 소홀히 해선 안 된다. 중국에서 차를 마실 때 과쯔(각종 씨)를 많이 먹는데, 나는 그다지 적절하지 않다고 생각한다. 차를 마실 때 먹을 수 있는 것은 반드시 담백한 다식여야 한다.

喝茶之後,再去繼續修各人的勝業,無論為名為利,都無不可,但偶然的片刻優遊乃正亦斷不可少。中國喝茶時多吃瓜子,我覺得不很適宜,喝茶時可吃的東西應當是清淡的“茶食”。

중국의 다식은 오히려 “만한보보”(만주족과 한족의 떡과 간식)이 되었고, 그 성질은 “어어또우 阿阿兜”(과자의 한 종류, 서양적인 것)와 차이가 얼마 없고, 차를 마실 때 먹는 음식이 아니게 되었다.

中國的茶食卻變了“滿漢餑餑”,其性質與“阿阿兜”相差無幾,不是喝茶時所吃的東西了。

일본의 간식거리는 비록 콩, 쌀로 만든 완성품이지만, 그 우아한 형태와 색깔, 소박한 맛은, 다과의 자격에 매우 부합한다. 만약 각 색의 “양갱”(우에다 료스케의 고증에 따르면, 말하는 것은 중국 당 시대의 “양깐빙”에서 나왔다), 특히 특별한 풍미가 있다.

日本的點心雖是豆米的成品,但那優雅的形色,樸素的味道,很合於茶食的資格,如各色的“羊羹”(據上田恭輔氏考據,說是出於中國唐時的羊肝餅),尤有特殊的風味。

강남찻집 중에 “깐쓰 乾絲”라는 종류가 있는데, 말린 두부를 얇게 채썰어 만드는데, 생강과 간장을 더하고, 중탕가열해서(조려서), 위에 참기름을 뿌려, 손님들께 내서 대접하면, 그 팁은 “종업원”만이 가질 수 있다. 말린 두부 중 본래 “차깐茶幹”이란 종류가 있는데, 지금은 채絲로 바뀌었고, 또한 꽤나 차와 잘 맞는다.

江南茶館中有一種“乾絲”,用豆腐乾切成細絲,加薑絲醬油,重湯燉熱,上澆麻油,出以供客,其利益為“堂倌”所獨有。豆腐乾中本有一種“茶幹”,今變而為絲,亦頗與茶相宜。

詞 匯 學 習

종류:種類 ,類 ,樣 。

이 지역의 나무 종류가 다양하다.

這一地區的樹木品種繁多。
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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